기록.자료

120년전 조선을 방문한 영국인이 그린 삽화들

파파원주 2015. 5. 7. 18:47

지금으로부터 120년전인 1890년 12월에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여행가이며  화가인 25세의 청년 '아놀드 새비지 랜도어'(1867~1924)가 조선을 방문,

수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서울과 그 근교의 조선 사람들의 모습과 풍습 등을 기록,

자신이 그린 삽화 함께 "Corea or Cho -Se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를 저술하였다.

 

1890년대는 동학, 갑오개혁, 아관파천, 요모시해 등 한국 근대사에서 치욕으로 점철된 격동의 시절이었지만

그가 방문한 1890년도는 마치 폭풍 전야처럼 이상하리만큼 큰 사건이 없었던 '고요한' 해였다

그는 짧은 체류 기간에 의한 오류도 간간히 보이지만 여행객 특유의 자신의 순간적인 인상과 경험담을 담담히 주관적으로 묘사했지만,

이런 첫 이미지들이 오히려 사료적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에 오래 체류한 외교관이나 선교사 등은 한국에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서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완곡히 비판하거나 우호적인 논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

 

"전체적으로 볼 때 조선 사람은 결점이 많이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더 자애롭고 더 문명화되어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이

자랑할수 없는 장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결국 이교도와 기독교 간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이교도의 관용과 자애는 익히 알려진 기독교의 박애보다 간혹 더 위대할 수 있다"

그가 조선 민초들 간의 자신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처지가 된 이웃을 도와주는 상부상조하는 풍습을 보고 감탄하면서 쓴 글 중 일부이다.

그는 한국인의 저력과 온화한 민족성을 정확하게 본 것이다!

 

 

 

원문 첫 장.

아놀드 새비지 랜도어(Arnold H. Savage landor).  수식어가 '새비지'인 걸로 볼 때 가문 대대로 모험과 여행을 좋아했던 걸 알 수 있다.

제물포.

관용 당나귀.

유부남인데 12살이란다.

승려.

총각.

서대문.

중국 사신들을 영접하는 고종(?)

 

신식 군대의 보병.

기마병. 우모(?)

절의 석가 상.

민영환. 1890년 당시 형조판서. 그는 민비의 조카다. 1905년 을미 조약 체결 직후 의분 자결하였다.

랜도르는 왕자로 표기하였다. 사진에다 덧칠한 삽화이다.

     

목형틀을 멘 죄수. 부녀자.

탑골 공원 원각사지 10층 석탑. 파고다 공원으로 표기하였다.


영은문. 지금의 서대문 근처 독립문 자리에 있었다. 중국 사신들을 영접, 마중 나가는 문이라 하여 영은문(迎恩門)이라 칭했는데

 6년 뒤 사대주의를 타파의 명분으로 독립 협회 주도로 철거, 그 자리에 지금의 독립문을 세웠다.


사진은 영은문.

민영환 형조 판서. 그는 1890년대 영국 공사, 유럽 6개국 공사 등을 지낸 반일 친서방 개화파였다.

물지게.

증흥사 승려들(?) 그는 구파발 북한산성 쪽 대서문으로 올라가는 북한산을 등반할 때  증흥사를 구경하였다.

안타깝게 일제 강점기 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등산이 취미 중 하나라 증흥사를 몇 번 가보았지만 그 터가 정말 축구장만한 크기다.  

그래서인지  복원이 엄두가 안 나는 모양이다.

고종 황제. 무슨 세종대왕처럼 위엄있게 그렸노? 아마 상상의 묘사였을 거다.

고종은 155cm...

    

'미인'이라 부기하였지만 결혼식 때 신부 같다.

상투 튼 결혼한 남자.

'가수' 기생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숭례문. 남대문으로 표기하였다.

서울 훈련 연병장.

남산.

그는 우연히 광화문 밖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들을 따라가다 참수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한다.

망나니들은 술에 취해 있어 한번에 목을 치지 못하고 어깨 등 여러 군데를 잘못 친 끝에  참수해 정말 참혹한 현장이었다 한다.


 

궁전으로 표기하였다. 창경궁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직역하면 '서울의 장님 거지'

'김가심(?)' 고위 관료 같은데 ' 누꼬?


  코리안 알파벳.


봉화소와 'Joss house'(성황당?)

사또 행차. 1륜 가마로 관청으로 출근하는 모습.

외국인들이 구한말 조선에 대해 쓴 글 중에서 한결 같은 공통점은 '조선의 관료들은 말단에서 위까지 무능하고 부패하고

 게으르고 오직 백성을 수탈하는데만 몰두하는 아무 쓸모 없는 범죄자와 다름이 없다'고 기술하였다.

그리고 '모두 한 통속이라 개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개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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