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웃음

개화기 한국 빈티지 희귀 사진들

파파원주 2015. 1. 11. 14:08

 

"우리가  원조 강남스타일이다!" 1904년 여름 당시 양반들 사이에  유행이었던  수입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허리춤엔 묶은 복주머니들를 일부러 노출, 찰랑거리면서 활보하는 중년의 두 사나이.

 


1931년 정월에 널뛰기를 하는 여성들. 이방인 눈에는 서서 하는 한국식 시소의 역동성과 스릴을 신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사진기가 선보인 게 1856년이니 1863년에 찍은 이 사진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 중에 하나일 게다.

조선 관리들로 보이는 사진으로 맨 아래 중년의 남자는 김흥국씨의 증증조할아버지이시다.

애국보수 김흥국 형님이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의 후손이었노! ^^ (물론 근거는 없다)



나이가 무척이나 어려 보이는 기생이다.



1907년 광화문의 해태상. 언제 보도쪽으로 옮겨졌노!



1904년 상복.



시장 왼쪽 가게는 선글라스, 가위 등 생활용품을 주로 팔고 있고 그 옆 가게는 각종 신발 문방류 등를 파는 것 같다.



1095년 미국 총영사 고든 패독, 뉴 랜즈 상원의원,유림들과 기생들. 환영 연회장에서 촬영.


1904년 뉴 랜즈 상원의원.


 


1905년 왕능을 관리하는 능참봉과 서양인 고든 패독과 용모가 흡사)과  왕릉.



1904년  음력 설날에 술주전자를 들고 가는 아낙과 옆에 상투 튼 남자.



1904년 상복.


우물에서 물을 기는 물지게꾼들.



미 선교 학교 어린이들.



형형색색 저고리 고름을 파는 행상.

 


1904년에 개통된 무개 기차 위의 사람들. 일본군도 보이고 한국인 중에 서구적인 스타일의 복색도 더러 보인다.



3층 그네는 처음 본다.


 



1900년대 호랑이를 잡은 호랑이 전문 사냥꾼. 일본 강점기에 남획하지 않았서도 먹이 사슬이 끊겨 결국은 멸종될 운명이었지만, 인위적으로 혈통을 계승 보존했다면

오늘날 동물원에서 시베리아산 호랑이를 구경하지 안 해도 되는데 유감이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황태자 순종. 키가 안스러울 정도로 난쟁이 똥자루만 하다.

조선왕조 창건자인 이성계는 키가 180 정도 되었다는데 조선 왕들은 서구 왕실과는 반대로 근대로 가면 갈수록 신장과 지능이 반비례해서 떨어지니 괴이하구나.

조선왕조의 말로를 신체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이다.



빨래터.



일본의 사진 엽서 속의 대동강 정경. 아름답구나! 통일되면 꼭 가보고 싶다.



기생들.


유생들. 개화기 쯤에는 양반의 위상이 추락 할대로 추락하고 상업의 발달로 신흥 부유층이 생겨  돈주고 신분을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였다고 한다. 양반은 놀랍게도 병역에서 면제이기 때문이다.

특권만 있고 의무가 없는 양반 신분 제도, 원조 중국유학자들도 학을 뗀 텔레반식 성리학, 뭔가 만들고 뭔가 거래하는 것을  천하게 여겨 터부시하는 사농공상의 사상 등 조선왕조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1890년대 숭례문 앞 풍경.


1904년 초가집 문(?) 앞에서 떡방아찧기을 하는 늙은 가족들.


1904년 평양. 서민계층이 외출할 때 햇볕가리개 대용으로 양산 대신 '키'를 사용했다. 키란 곡식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농사 용품이다 




1921년 포도청에서 재판하는 모습.


다듬질하는 모녀.


조선 장군을 태운 희귀한 외발인력거.


1890년대 한양 성곽 위에서 바라 본 서울 전경. 박정희 대통령이 저 초가집 군집을 마천루의 군집으로 환골탈태의 기반을 닦아 주신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라 아니할 수 없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 일본군.



1904년 초가집 앞에서 농부와 그의 딸.


 


1904년 미 선교 학교 학생인 것 같다.


1904년 자기 키만한 의료 장비를 지게에 싣고 일본군과 동행하는 짐꾼. 옆에서 쳐웃는 일본놈 면상을 짓이겨주고 싶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일전쟁마저 승리해서 조선의 주인이 결정났다.



상여 행렬.

궁터에서 활을 쏘는 아낙네들.

1904년 통신원 직원들 단체 사진.


1904년 러일전쟁시 발틱함대 격파를 기념하기 위해 경복궁 주합루에 모인 일본 고위 장교와 한국 관리들. 주합루 상판은 행사를 위해 치워졌고 대신 일장기와 태극기를 걸어 놓았다.

양국이 우호적인 관계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술책이다.



음력 설날.



장터 상인들.


1904년 지게꾼과 서민들.


수원성.



한때 민비 사진  진위 논란이 있었지만 이 여인은 궁녀이거나 대원군의 애첩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민비는 마마 자국에 별 볼품 없는 용모였다고 하니 말이다. 이 사진의 여인은 마지못해 사진 촬영에 응해선지 찌풀린 표정을 하고 있지만 갸름한 얼굴에

흰 피부,단아한 이목구비 등 지금 기준으로도 서구적인 미인이다. 아무튼 다른 왕족들의 사진은 좀 있는데 민비의 사진이 한 장도 발견 못하는 게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1925년 경성. 현재의 서울역. 동경도 아닌데 정렬한 인력거가 낯설다.


다듬질하는 양반 집 규수.



엄청나게 추운가 보다.



새신랑을 태운 가마 행렬. 신랑집이 갑부인가 보다.



1934년 대구. 독립운동가 서상돈 가문 가족 사진.

[수컷닷컴]